지난시간의 골프의 기원에 이어서 우리나라에서의 골프의 역사를 알아볼겠습니다.◆ 우리나라 골프의 역사 우리나라에는 1800년대 말 영국인 세관원들이 들여와 우리나라에 처음 골프가 들어온 것은 확실하지 않지만1897~1900년경, 함경남도 원산항이 개항하면서 원산 세관이 창설되고 그때 원산 세관에 파견돼 나온 영국인 세관원들이 원산항 근처 해변에 6홀짜리 영국인 전용 코스를 만들어 즐겼다는 것이 기록상으로는 남아 있습니다. 1921년 6월 1일, 현재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자리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효창원 코스가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때 일본에 와 있었던 러시아계 영국인인 H.E.Dannt에 의해 설계된 9홀의 코스가 등장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 효창원 코스를 한국 골프의 효시라고도 합니다. 1921년 6월 1일 오픈한 ‘경성골프클럽’은 비록 일본인이나 외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뚜렷한 시기와 장소 그리고 기록이 존재하고 무엇보다도 한국인 골퍼들에게도 개방된 골프장이란 점에서 한국 골프계의 효시로 보는 관점입니다.하지만 1923년에 “코스가 협소하고 또 지형이 변화가 심해 수준급 골퍼들에게는 좋으나 비기너에게는 어렵다”는 불만이 터지면서 코스를 옮기자는 주장이 나와 결국 1924년 12월 2일 코스를 폐쇄하고 12월 7일 청량리 코스로 옮겨가게 됩니다. 청량리 코스는 우리 나라 최초의 ‘인’, ‘아웃’ 두 코스의 파 70인 코스로 이룹니다.1924년 11월 하순에 완공, 12월 7일 효창원 코스가 청량리 코스로 이전하고 1925년에는 한국 최초의 경기인 "제1회 전(全)조선골프선수권대회"가 열리게 되었고 윤호병, 민대식, 임긍순, 김한규 등 주로 금융인들인 최초의 한국인 골퍼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즈음 한국 골프사에 특이한 인물이 바로 영친왕입니다. 그는 왕족으로서 골프에 대단한 열의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네요 그는 구 한말 왕실의 말과 양을 사육하던 땅 약 30만평을 하사하고, 또 골프장 건설비로 당시로선 거금이었던 2만원을 내놓았다고 합니다.이에 따라 1927년 당시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군자리(서울특별시 성동구능동 438번지. 현재 어린이 대공원자리)에 골프장을 건설하기 시작해 1930년 한국 골프계의 총본산인 ‘서울컨트리클럽’이 태동하게 됩니다. 영친왕은 그 후에도 3년간에 걸쳐 해마다 보조금으로 5천원씩을 하사했다고 합니다.서울컨트리클럽은 18홀을 갖춘 총연장 6,160야드의 규모로 본격적인 한국 최초의 골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청량리 코스는 이 골프장 건설로1929년 6월 22일 폐장했습니다. 1937년 경성골프클럽 소속이자 국내 최초의 프로인 연덕춘씨가 전일본오픈골프 선수권대회에 최초로 출전,8위에 입상하면서 일본 골프계의 주목을 받게되고 그는 1941년 드디어 전일본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합니다.1942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골프대회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1949년 가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복구됐다가1972년 10월 31일 폐장합니다.1954년 이승만 대통령 정부 시절에 골프장을 짓게 되었고"제1회 대통령배 아마추어 대회"를 개최하여 대통령이 직접 시상했습니다.이후 1972년 박정희 대통령때 서울컨트리클럽을 고양시로 이전하고그 자리엔 현재 어린이대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1968년에 KPGA한국프로골프협회가 만들어졌고구옥희 프로가 미국여자프로골프대회첫 우승으로 전세계의 한국골프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년 IMF시절에는 박세리 프로가 미국LPGA에서 우승을 하며 힘든시기를 보내는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2002년 최경주 프로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PGA 컴백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남,녀모두 골프의 강한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후 현재 많은 프로들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좋은 성적을 기대해 봅니다.
관리자 |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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